벌써 개강 2주차. 생각보다 수업을 듣는 게 괴롭지 않다(?) 인간의 적응력이란 새삼 대단하다고 느낀다! 비대면 수업을 듣는 것도, 교수님들의 강의 방식, 패턴 등도 익숙하다. 내용들도 새롭고 약학은 아직 거의 아는 게 없지만... 어떤 의미로는 낯설지 않다. 그건 이 필드(좁게는 약학, 넓게는 과학)에서 쓰는 용어들, 논리 체계, 사고 방식 등에 점점 익숙해지고 젖어들고 있기 때문일 거다.
약대 수업이 생각보다 괴롭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는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베이킹때문이다. 약대에서 배우는 내용들이 은근히 베이킹에 숨어있는 과학적인 원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계란 노른자에 있는 레시틴이 계면활성제 역할을 해서 친수성 베이킹 재료들과 소수성 재료들(예:버터, 오일)을 섞이도록 도와준다든지. 지금 사워도우 스타터, 천연발효종을 키우는 것만 해도 그렇다. 결국 미생물 배양에 대한 이야기로, 최적의 배양 조건 (온도, 습도, 영양분 등)을 찾으려고 노력 중인 것이다.
비단 과학적인 원리나 내용을 학습하는 것을 넘어서....이 두 세계의 논리(?)나 메커니즘(?)의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어제 약제학 개론 시간에 고대 시대의 파피루스에 적혀있는 800종 이상의 제법(formula) 나 처방(prescription)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듣자마자 떠올린 건 '아 결국 formula란.... 레시피인거네!'였다. 둘 다 레시피 혹은 제법에 따라서 특정한 재료를 특정 조건 하에서 혼합하여 만들어내고, 이러한 제조 과정은 과학적인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뿐만 아니라, 약제학과 제제학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듣는데 이상하게 빵의 이야기로 들렸다(?!). 약물, 그러니까 drugs는 우리 몸에 들어가서 활성을 나타내고 치료 효과를 가지고 있는 원료 물질(API; Active pharmaceutical ingredient)을 의미한다. 페니실린 등이 그 예시인데, 이런 원료물질을 그대로 사용하는 게 아니다. 이러한 원료 물질을 유효성, 안정성, 안전성, 품질이 확보된 의약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특히 첨가제를 넣어 배합 가공하여 제제화(pharmaceutical manufacturing)하는 과정을 거쳐 캡슐제, 주사제, 흡입제, 과립제 등 다양한 형태의 제형(Dosage forms)을 만들게 된다. 사용 목적에 부합하면서도 편리한, 환자가 복용하기 용이한, 맛과 냄새, 강도 등도 괜찮은, 외관상으로도 보기 좋은, 그런 형태를 만들기 위한 부단히 연구하고 노력한다.
이런 설명을 들으면서 빵을 상품화/제품화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중에 판매하는 빵들을 보면 대부분 각종 첨가제들이 들어있다. 세균의 번식, 부패를 막거나 제품의 안정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미관상의 이유로 혹은 식감 등을 위해서 첨가하기도 한다. 이렇게 제빵의 세계에서도 첨가제를 넣고, 품질을 균일하게 만들고, 유해하지 않으면서 향이 좋고 맛있고 식감이 뛰어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매일 먹는 주식과 같은 식사빵에 첨가제를 쓰고 싶지는 않지만 제품화는 또 다른 이야기니까)
약제학은 수업 시간이 끝나면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교수님과 전화상담을 하는데 이번 학기 첫 상담이 우연하게도 나였다(!). 교수님이 방학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셔서, 베이킹 이야기를 꺼냈다. 특히 작년에 배운 물리약학이 베이킹의 원리를 이해하는데 어떤 도움이 주었는지, 그리고 오늘 수업 시간에 들으면서 어떤 지점에서 약학의 세계와 제빵의 세계에서 유사성을 느꼈는지 신나게 이야기했다. 교수님이 듣고 막 웃으셨는데... 의외로 진지하게 답변을 해주셨다. 정확히는 워딩이 기억이 안 나지만, 실제로 약물을 제제화하는 기계들? 공정들? 중에서 빵? 기계들?과 겹치는 것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물어봤어야하는데 못 물어봤다...!) 우와! 진짜 그런가.
물론 이 두 세계는 말할 필요도 없이 너무나도 다르다. 약물은 빵과 달리 치료를 목적으로 하고 몸에 미치는 영향이 현저히 다르다. 그러니 국가에서 약의 표준서(약전)을 만들어서 제법, 각종 시험법, 저장방법 등을 규정하고, 약의 제조와 관련 업무를 특정 집단(약사)에서만 가능하도록 한정지었을 것이다. 만약 집에서 제빵을 하듯이 취미로 모르핀을 제조해서 투여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음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여하튼 이렇게 수업을 들으면서 엉뚱한 생각(?)을 펼치고 있다. 수업 듣다가 짬날 때 발효종 먹이도 주고, 반죽도 접어주고, 성형도 하고, 오븐 예열도 하고... 그러다보니 자꾸 빵 이야기를 엮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앞으로는 좀 자제하긴 해야할 거 같다. 둘 다 제대로 못할 때가 많...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는 건 역시 너무 어렵다.)
약제학 제제학 관련 내용 출처: 약제학총서 1 <제제학> 1장 약과 제제의 이해, 약제학분과회 공저, 도서출판 신일북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루던 일을 끝냈을 때의 행복이란!! (0) | 2021.05.02 |
---|---|
윤여정 배우님의 아카데미 수상 소식을 듣고 든 생각들 (0) | 2021.04.26 |
8시간 반의 수다 (0) | 2021.04.24 |
일단 중간고사 끝!!!! (레포트는...) 코로나 시국에 비대면 온라인시험이란...! (0) | 2021.04.23 |
주말의 단상: 사워도우 선물, 해마와 기억, 그리고 기쁜 소식 (0) | 2021.03.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