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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의 책 나이 없는 시간: 나이 듦과 자기의 민족지
말 그대로 첫눈에 반했다!!!!!❤️❤️❤️ (책을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이 책은 반드시 기록에 남겨야 한다는 벅찬 마음으로 일단 글을 쓰고 본다.)
프랑스 인류학자인 마르크 오제의 책이다. (참고로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 작고 얇은데 앙증맞고 귀엽다.) 마르크 오제는 "비장소"라는 개념으로 공간에 대한 새로운 사유와 통찰을 제시한 분이다. "비 장소"는 워낙 유명한 개념이라서 여기저기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마르크 오제의 논문이나 저서들을 직접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사실 이 책이 이 인류학자와의 실질적인 첫 만남이다. 책을 딱 펼치니 "나이가 들수록" 챕터가 나와서 이걸 먼저 봤는데, 첫 페이지를 보고 그냥 반했다.
나이가 들수록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낫다. 왜냐하면 나이는 예민한 동물이며, 자신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 그 침묵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만들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화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은 너무나도 많다. 따라서 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로부터 눈을 떼지 않는 게 더 현명하다. 요컨대 나이가 들수록 자존심을 거두고 노화를 환영하겠다고 선언하는 것, 인자하게 꾸러미에서 선물을 꺼내는 산타클로스처럼 겸손하고 열정적으로 선물 리스트를 챙기는 것이 최선이다. 특별한 순서 없이 나열하며 본질적으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경험에서 나온 지혜, 성적 충동의 고뇌를 대체한 평온함, 공부의 기쁨, 일상 속 작은 즐거움이라는 선물을 얻게 됨을 뜻한다. 간단히 말해 고대 그리스인들이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를 '친절한 자들'이라는 뜻의 '에우메니데스'라 불렀듯, 순화된 방식으로 노화를 마주하면 나이가 들면서 얻는다고들 하는 이득을 떠올리게 되고, 그럼으로써 노화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p.19-20)
이 한 단락만 보고도 이 책을 잘 샀다고 생각했다. 이 한 단락으로 이미 그 가치를 충분히 입증했다❤️ 삶을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운 직관과 통찰, 그리고 담백하고 명료한 언어로 풀어내는 깊고 풍부한 사유. 뭔가 너무 좋아서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였다. 오두방정 주책인 걸 아는데.... 그만큼 좋다!!!!!! 내가 이래서 인류학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인류학자들을 존경했나 보다. (아 물론 여전히 사랑하고 존경한다.) 이렇게 강렬하게 끌림을 느끼는 어떤 것을 만나는 건 너무너무 귀하고 귀한 일이다. 위 단락을 계속 계속 곱씹어서 읽어보았다. 어떻게 글을 저렇게 쓰실 수 있을까.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나이가 들수록 자존심을 거두고 노화를 환영하겠다고 선언하"고 "인자하게 꾸러미에서 선물을 꺼내는 산타클로스처럼 겸손하고 열정적으로 선물 리스트를 챙"기라는 말에 웃음이 터졌다. 유쾌하시기까지 하다.
먼저 카토를 통해 전한 것처럼 무력감과 건강 악화는 노년의 전유물이 아니며 젊은이 역시 겪을 수 있는 상태다. 노인들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보살펴야 하며, 나이가 들어 어린 시절의 정신 상태로 되돌아가는 사람은 자연적으로 빈곤한 정신의 소유자다. 물론 노화가 특정 활동을 중단시키기는 하지만 정성 들여 활력을 유지해 온 사람의 정신에는 유해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누군가가 어떻게 나이 들었는지를 안다면 그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알 수 있다. (p.21-22)
"어떻게 나이 들었는지"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준다는 것. 나이가 들면서 유아적으로 퇴행(?)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자연적으로 빈곤한 정신의 소유자"라는 말은, 가슴 한편을 서늘하게 만든다. 여기서는 노화가 정신적으로 스스로를 잘 가꾸어온 사람들에겐 유해하지 않다고 하지만, 사실 책 곳곳에 가끔씩 노화에 대한 냉철하고 무섭도록 현실적인 인식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챕터를 보고 첫 챕터 "고양이의 지혜"로 돌아왔다. (나는 책을 좀 마음대로 읽는다...!) 시간과 나이, 인간의 얽히고설킨 복잡스러운 관계에 대한 통찰을 이렇게 깔끔하고 간결하게 담아낸다.
고양이가 인간에 대한 은유는 아니겠지만 나이를 추상적 개념으로 만드는 시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의 상징은 될 수 있다. 우리는 시간에 잠겨 있으며, 이따금씩 몇몇 순간을 향유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시간에 투사하고 시간을 재발명하며 시간과 함께 논다. 훌쩍 흘러가는 시간을 놓쳐 버리기도 하지만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시간은 우리 상상력의 원료다. 반면에 나이는 지나간 나날을 상세히 설명하는 방식이자 세월의 흐름을 한 방향으로만 이해하는 관점이다. 이렇게 나이를 통해 우리가 보낸 세월의 합계가 제시되면 우리는 망연자실한 감정에 빠진다. 나이는 우리가 확실히 아는(적어도 서구에서는) 출생일과 우리가 되도록 미루기를 원하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사망일 사이에 우리 각자를 밀어 넣는다. 시간은 자유를 뜻하지만 나이는 제약을 뜻한다. 분명한 사실은 고양이는 이러한 제약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p.12-13)
"시간은 자유를 뜻하지만 나이는 제약을 뜻한다." 말장난 같지만 정말 그렇다. 나이가 주는 제약들을 이따금씩 의식하며 살아가겠지만, 그럼에도 주어진 자유, "상상력의 원료”인 "시간"을 잘 가지고 놀아야겠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리고 또 곱씹게 되는 첫 챕터의 마지막 단락의 이야기.
우리는 모두 어느 연령대가 되었든 모든 면에서 나이에 대한 문제를 경험한다. 그것은 본질적인 인간 경험이며, 어느 문화에서나 자아와 타자가 조우하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는 또한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지점이기도 하다. 끈기와 용기를 지닌 사람이라면 이 지점에서 자기 삶에 부담을 지우는 절반의 거짓과 절반의 진실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가 되었든, 어떤 관점이 되었든 우리 각자는 자신의 나이에 대한 질문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으며, 그에 따라 자기 삶을 관조하는 민족학자 ethnologue가 된다. (p.17-18)
아주 복잡스럽고 모순이 가득한 "자아와 타자가 조우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경험이라는 것. "절반의 거짓, "전발의 진실" 그리고 어떤 질문들을 마주하면서 삶을 들여다보는 것. 나이 듦이란 것은 그런 것인가 보다.
대략적으로 후루룩 넘기면서 봤는데, 약간 읽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는 거 같다. 사유가 아주 옹골차게 응집되어 있어서 그렇기도 하고, 배경지식이 필요한 부분들이 있어서 그런 거 같다. 그래도 대부분은 곱씹어보면서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좋은 이야기들이 많은 거 같다. 천천히 느긋하게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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